
수요가 늘면 시설을 확충할 수 있다. 그러나 수요가 급증했다고 예산과 절차까지 건너뛸 수는 없다. 포천시 구읍천 파크골프장 조성사업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파크골프장이 필요한가에 있지 않다. 필요한 시설을 어떤 절차로 만들고, 얼마나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게 운영할 것인가에 있다.
26일 포천시의회 제196회 정례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지적된 사업 추진 과정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문화체육과는 해당 사업의 별도 예산이 확보되기 전인 1월 15일 설계용역을 먼저 발주했고, 이후 4월 제1회 추가경정예산에서 사업비 3억 원을 확보했다. 의회에서 ‘의회 패싱’이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담당 부서는 파크골프장 수요가 급증해 서둘러 추진했다고 설명하면서 사전 보고와 절차가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수요 증가는 의회를 설득해야 할 근거이지, 의회의 판단을 뒤로 미룰 명분이 아니다. 행정의 속도는 절차를 생략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검토와 협의를 제때 마치는 데서 나와야 한다.
■ 먼저 시작한 사업, 좁아진 의회의 선택권
예산 확보 전 발주의 문제는 단순히 일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용역이 시작되고 비용이 발생하면 의회는 사업을 원점에서 검토하기 어려워진다. 중단하면 이미 투입한 비용이 부담이고, 계속 추진하면 집행부의 결정을 사후 추인하는 모양새가 된다.
예산 심의가 사업의 타당성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시작한 사업의 뒤처리를 승인하는 자리로 바뀌는 것이다. ‘의회 패싱’ 논란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물론 별도 사업 예산이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발주의 위법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사용한 예산 항목과 집행 근거, 계약 절차를 확인해야 한다. 그렇기에 포천시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하다. 어떤 재원과 판단에 따라 발주했는지, 누가 검토하고 승인했는지 공개해야 한다. “급해서 그랬다”는 설명은 경위일 수는 있어도 책임 있는 해명이 될 수는 없다.
용역 중지 상태에서 기성금이 지급됐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용역이 중지됐더라도 이미 완료된 과업에 대한 대가는 지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중지 여부만이 아니라 실제 수행한 업무와 검사 결과, 지급액의 산정 근거다. 적정한 집행이었다면 계약서와 성과물, 검사·지급 자료로 설명하면 된다. 의문을 해소할 책임은 자료를 가진 행정에 있다.
■ 주차와 진입로, 안전은 개장 뒤의 숙제가 아니다
현장 여건을 둘러싼 지적도 가볍지 않다. 협소한 주차 공간과 진입로 병목, 홀 사이의 좁은 간격과 안전망 보완 필요성이 감사에서 제기됐다. 이는 시설의 편의성을 넘어 이용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고령층 이용이 많은 시설에서는 차량 교행과 승하차, 보행 동선을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이용객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주차장이 차면 차량은 어디로 향하는지, 보행자와 타구의 동선은 어떻게 분리되는지부터 설계에 담겨야 한다. 수요가 많다는 사실은 안전 검토를 서두를 이유이지, 검토를 줄일 이유가 아니다.
사업계획 변경에 대한 주민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 역시 같은 맥락이다. 주민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일은 사업이 끝난 뒤 치르는 의례가 아니다. 교통과 생활환경에 미칠 영향을 미리 확인하고 설계에 반영하는 과정이다. 민원이 발생한 뒤 대응하는 행정을 소통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 수돗물로 잔디를 관리하기 전에
용수 계획은 이 사업의 준비 수준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시험대다. 감사에서는 잔디 관리에 수돗물을 사용하는 데 따른 비용 부담과 대체 수원 확보 필요성이 제기됐다. 의원들이 빗물이나 자연 유입수를 저장하는 담수시설을 검토하라고 주문한 이유다.
수돗물 사용 자체를 곧바로 낭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필요한 물의 양과 사용 기간, 대체 수원의 수질과 공급 안정성, 시설 설치비와 유지관리비를 함께 따져야 한다. 반대로 당장 쓰기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수돗물에 의존하는 계획 역시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담수시설도 만능 해법은 아니다. 부지와 안전관리, 수질, 하천 관련 제약 등을 검토해야 하고, 지하수 역시 취수 가능성과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야 한다. 필요한 것은 특정 대안을 정답으로 정해놓는 일이 아니라, 대안별 비용과 효과를 비교한 자료다.
포천시는 예상 사용량과 수도요금, 빗물 저장·담수·지하수 활용 방안의 설치비와 장기 운영비를 시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다른 골프장 사례를 검토하겠다”는 답변은 검토의 시작일 뿐, 대책의 완성이 아니다.
기존 한여울 파크골프장도 함께 점검해야 한다. 공공체육시설을 수익성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시민의 건강과 여가라는 공익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성이 운영비 검증을 생략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기존 시설의 이용률과 운영비, 용수 비용을 확인하지 않은 채 새 시설부터 늘린다면 재정 부담도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다.
■ 필요한 것은 사과보다 공개와 재발 방지다
포천시가 지금 내놓아야 할 것은 추상적인 유감 표명이 아니다. 설계용역 발주에 사용한 예산과 계약 근거, 용역 중지 및 기성금 지급 자료, 주차·진입로·안전시설 보완계획을 공개해야 한다. 주민설명회 일정과 용수 대안별 비용 비교, 개장 이후 운영비 추계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업 착수 전 예산 확인과 의회 보고, 계획 변경 시 주민 설명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도 명확히 해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파크골프장 수요가 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많은 시민이 이용할 시설이기에 더 엄격한 준비가 필요하다. 수요는 사업의 출발점이고, 예산 심의는 시민의 돈을 지키는 장치이며, 안전과 운영계획은 완공 이후까지 이어지는 행정의 책임이다.
구읍천에 필요한 것은 잔디만이 아니다. 예산의 근거를 확인하고, 의회의 판단을 존중하며, 주민에게 설명하는 행정의 기본이다. 그 기본을 갖추는 일이야말로 시민이 원하는 시설을 제대로, 그리고 오래 쓰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시사큐브 양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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