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소방서의 산불진화 합동훈련 실시 모습 [사진=포천소방서]
포천소방서의 산불진화 합동훈련 실시 모습 [사진=포천소방서]

불길 속으로 주저 없이 뛰어드는 소방관의 뒷모습은 언제나 묵직한 감동을 준다. 우리는 재난 앞에서 그들의 헌신에 감사하고, 순직 소식이 들릴 때마다 한마음으로 눈물 흘린다. 정치권과 정부 역시 입을 모아 “소방관의 안전과 처우 개선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 역설한다. 하지만 찬사와 위로의 말이 잦아들고 장례식장의 국화꽃이 마르고 나면, 냉혹한 숫자의 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법적으로는 ‘국가직’이 되었으나, 그들을 지탱하는 돈줄은 여전히 취약한 ‘지방’의 몫으로 묶여 있는 이 기형적인 구조 말이다.

지난 2020년 4월, 소방공무원 신분이 국가직으로 일원화된 결정적 이유는 명확했다. 사는 지역의 재정 자립도에 따라 국민의 생명 가치가 달라져선 안 되며, 어느 소방관이든 근무지에 상관없이 동등한 안전 장비와 합당한 처우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였다. 그러나 제도가 바뀐 지 여러 해가 흐른 지금도 본질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신분만 국가직, 지갑은 여전히 지방직’이라는 현장의 자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부라 불리는 경기도의 현주소는 이 모순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국 등록공장의 43.6%인 약 7만 9천 개가 경기도에 집중되어 있고, 연평균 800건이 넘는 공장 화재를 도내 소방관들이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공장이 내는 막대한 법인세는 국고로 들어가고, 재산세는 시·군으로 향한다. 광역지자체인 경기도는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천문학적 부담만 짊어진 채, 정작 이를 뒷받침할 세원 확보 통로는 가로막혀 있다.

수치로 마주하는 현실은 더욱 비정하다. 올해 경기도 소방공무원 인건비 약 1조 1,973억 원 중 국가 지원은 고작 7.7%(921억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92.3%인 1조 1,052억 원은 고스란히 경기도의 자체 예산으로 메우고 있다. 여기에 현행 소방안전교부세의 주요 재원이 담배분 개별소비세에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금연을 권장하면서, 국민의 목숨을 구할 소방 재정은 담배가 많이 팔려야 채워지는 블랙코미디를 언제까지 방치할 셈인가.

재정의 한계는 결국 현장의 안전 공백으로 이어진다. 첨단 장비를 들여와도 운용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애를 태우는 소방관들의 호소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경고음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도 소방 예산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아이들의 무상급식, 보육교사 처우 개선, 산후조리 지원 등 도민을 위한 필수 복지 예산을 줄여야 하는 가혹한 제로섬 게임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소방관의 안전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며, 둘 다 지켜내야 할 국가의 기본 의무다.

공동체의 안전은 말로 지켜지지 않는다. 예산과 제도로 뒷받침되지 않는 찬사는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지방 사무'와 '국가 사무'의 벽을 세우고, 비용 청구서만 지자체로 떠넘기는 낡은 관행은 이제 끝내야 한다.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했다면, 그들의 인건비와 핵심 장비 예산 역시 국가가 온전히 책임지는 것이 순리다. 현장의 절박한 외침에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법과 예산으로 답해야 할 때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