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전국 청소년 토론 축제 심사위원 연수에서 ‘1인 2표제’와 4단계 누적 평가제 등 운영 규칙을 설명하는 신동명 박사. [사진=시사큐브]
제23회 전국 청소년 토론 축제 심사위원 연수에서 ‘1인 2표제’와 4단계 누적 평가제 등 운영 규칙을 설명하는 신동명 박사. [사진=시사큐브]

[시사큐브=양동원기자] “우리 아이들은 대회에 나가면 늘 들러리로 병풍 노릇만 하고 와서 이번에도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의정부에서 열린 경기도 대회에 다녀온 아이들이 먼저 ‘선생님, 이번에는 책을 좀 읽고 나가야겠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아이들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최근 올해 대회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한 지역아동센터를 찾은 신동명 박사에게 센터장이 건넨 감사 인사다.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대회에서 늘 주변부에 머물렀던 아이들이 비경쟁 키워드 토론을 통해 발언의 즐거움을 맛보고 스스로 독서 동기를 깨우친 것이다.

세종시로 부임한 한 중학교 국어 교사도 비슷한 증언을 남겼다. 다른 토론 대회는 한 번 출전한 학생들이 진을 빼며 다시는 안 나간다고 손사래를 치는 반면, 이 축제에 다녀온 학생들은 학년이 바뀌고 봄이 오면 먼저 교무실을 찾아와 “선생님, 우리 그 토론 축제 언제 나가요?”라며 일정을 재촉한다는 것이다.

■ 거실에서의 게임 실랑이도 훌륭한 토론… “토론의 다른 이름은 민주주의”

신 박사는 학부모들에게 “특별한 준비 없이 아이들을 믿고 내보내라”고 조언한다. 아이들은 이미 일상 속에서 치열한 토론 훈련을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아이에게 어머니가 “계속 게임하면 핸드폰 부숴버린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아이는 “엄마, 지금 공부하는 거란 말이야”라고 맞선다. 깨지지 않게 침대 위로 슬쩍 스마트폰을 던지는 시늉을 하며 “다음 달에 요금 안 내준다”고 압박하는 부모와 이에 맞받아치는 자녀의 일상적인 실랑이 자체가 이미 생각과 생각이 충돌하는 생생한 토론의 장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생을 갈아 넣으며 이 대회에 매달려 온 궁극적인 지향점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완성’에 있다. 학생 자신이 직접 한 표를 행사해 승부를 가른 뒤 대회장을 나서며 “엄마, 오늘 저 아이가 제일 잘했어”라고 깨끗하게 인정하는 경험이야말로 민주시민 교육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신 박사는 “상대방이 나보다 더 치열하게 준비했고 더 뛰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할 줄 아는 아이들이 자라야 대한민국의 정치가 바뀐다”며 “여당과 야당이 당리당략에만 매몰되지 않고 상대 당의 정책이 국민을 위해 더 훌륭하다고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는 정치 문화는 바로 이러한 교실 속 승복과 공유의 경험에서 시작된다”고 역설했다.

■ 노인 치매 예방부터 대치동 ‘문해력 올인원’까지… 교육 시장을 흔드는 무기

비경쟁 키워드 토론과 특허 교구 ‘토론고리’의 확장성은 학교 교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신 박사는 매주 수요일 의정부 고산주민센터를 찾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이 교구를 활용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4각 교구에 키워드 대신 숫자를 넣어 사칙연산 게임을 하거나, ‘도·개·걸·윷·모’를 넣어 윷놀이를 즐기며 세대 통합형 교구로 활용 영역을 넓혔다. 알파벳을 넣으면 영어 교구가 되고, 과학 용어를 넣으면 과학 교구가 되는 식이다.

이날 연수 현장에서는 일선 학원가에서 확인된 문해력·토론 교육의 폭발적인 파급력도 함께 공유됐다. 이번 대회의 웹사이트 구축과 홍보를 지원한 ‘생각코딩’의 공동설립자(이사)이자 서울 대치동과 경기 하남에서 25년째 영어·수학 학원을 운영 중인 한 원장은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생생한 시장 변화를 전했다.

그는 “영어를 전공하고 25년간 영·수를 가르치며 절감한 것은 결국 문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아이들은 성적 향상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었다”며 “대치동 본사와 하남 학원에 특허받은 생각코딩 기법과 문해력 기반 영·수 올인원 프로그램을 도입한 결과, 현재 영어 수강생의 90% 이상이 문해력 수업을 병행할 만큼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마침내 문해력과 토론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밝혔다.

신 박사 역시 독서·토론·논술이 정규 입시 과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원가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시각화’와 ‘전국 대회’라는 전략적 무기를 개발했다고 털어놨다. 글짓기 결과물이 남는 논술과 달리 말로만 오가는 토론은 학부모에게 교육 효과를 눈으로 증명하기 어렵다. 사과 상자에서 시작해 14각 특허 교구까지 개발한 이면에는, 사진 한 장만 찍어 보내도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저렇게 역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구나”라고 즉시 체감할 수 있게 하려는 치밀한 현장 전략이 숨어 있었다.

그는 “국어·영어·수학 성적 경쟁은 시험 기간이라는 예측 가능한 시점에 100점이나 1등이라는 뻔한 결과로만 나타나지만, 전국 규모의 토론 축제는 겨울방학 특강을 앞둔 11월과 12월 무렵 경쟁 학원이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장관상·국회의장상 수상이라는 결과로 지역 학원가를 뒤흔드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방식을 도입해 의정부에서 원생 1000명 규모로 성장한 학원과 6개월 만에 원생 200명을 돌파한 포항의 학원 사례가 그 방증이다. 학부모들이 대회장에 직접 동행해 전국 대회의 웅장한 규모를 눈으로 확인하고, 자녀를 가르치는 원장이 그 무대의 공정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두터운 신뢰를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단상 아래 모래밭에서 박수만 치던 소년이 32년 전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이제 교실의 풍경을 바꾸고, 사교육 시장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며, 미래 세대의 민주주의 훈련장으로 영글어가고 있다. 승패의 잔혹함 대신 “저 친구가 참 잘했다”는 따뜻한 인정과 “책을 더 읽고 싶다”는 자발적 열망이 피어나는 곳, 제23회 전국 청소년 토론 축제가 대한민국 교육의 내일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