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전국 청소년 토론 축제를 주최한 (사)한국청소년문화진흥협회 신동명 박사. [사진=시사큐브]](https://nnotwacry2xmbpev.public.blob.vercel-storage.com/articles/1792768356929-ciquer.jpg)
[시사큐브=양동원기자] 강의실 두 개를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어 하나로 틔운 충북 청주의 한 교사연수원 대강당. 제17회 대회를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심사위원들이 빈자리 없이 빼곡히 들어찬 사진이 화면에 띄워졌다. 제23회 전국 청소년 토론 축제 심사위원 연수 단상에 선 신동명 박사는 벽을 허문 그 사진처럼 대한민국 토론 교육의 오랜 벽을 허무는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초등학교 시절 6월이나 8월 무렵 웅변대회에 다녀온 날, 여러분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단상 위였습니까, 아니면 운동장 모래밭이었습니까.”
그의 유년 시절 자리는 늘 운동장 모래밭이었다. 단상 위에 오르는 이들은 반장과 부반장, 저녁이면 담임 교사의 집에서 과외를 받고 웅변학원과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이른바 ‘공부 잘하는 부유한 집 아이들’의 몫이었다. 말주변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성적이 최상위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모래밭에 앉아 박수만 치던 소년은 훗날 60세의 나이에 ‘한국식 확장형 토론의 정의와 교육적 효과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아이들에게 줄 장관상과 국회의장상을 한아름 준비한 대회 주최자가 됐다.
■ 편파 판정에 접은 태권도 국가대표의 꿈… “어른의 잣대로 아이 상처 주지 말아야”
기회의 박탈과 불공정한 평가는 운동장에서도 이어졌다. 어린 시절 의정부에서 촉망받던 육상·태권도 선수였던 그는 중학생 때 전국대회 예선을 치르기 위해 인천으로 향했다. 당시 경기장에는 주심과 부심 4명이 모두 인천 지역 인사들로 배치됐고, 경기에서 명백히 이기고도 상은 상대 선수의 몫으로 돌아갔다. 어른들의 편파 판정에 상처받은 소년은 그길로 국가대표의 꿈을 접었다.
성인이 된 그가 토론 대회를 설계하며 ‘무결점 공정성’과 ‘비경쟁 축제’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은 배경이다. 그는 과거 서울의 한 고등학교 토론 대회에 나갔던 심사위원의 한탄을 전했다. 일반고 학생들이 훨씬 뛰어난 기량을 보였음에도 주최 측이 당연하다는 듯 특목고 학생들에게 큰 상을 안겼다는 일화다. 신 박사는 “공부와 말하기가 무슨 상관이 있으며, 성적과 토론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교사와 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책을 안 읽어서, 공부를 못해서 토론을 못 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아이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클렙시드라(물시계)에 갇힌 ‘서구식 고정형’ vs 화백 정신 살린 ‘한국식 확장형’
그가 10권의 관련 저서를 집필하며 정립한 ‘한국식 확장형 토론’은 기존 교육계를 지배해 온 ‘서구식 고정형 토론’에 대한 근본적인 반기에서 출발했다.
신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링컨-더글라스식(1대1), 영국 의회식(2대2), 칼 포퍼식(3대3) 등 서구식 토론은 참여 인원이 철저히 고정돼 있다. 한 학급 인원을 30명으로 가정할 때 가장 인원이 많은 3대3 방식을 적용해도 6명만 주체가 될 뿐, 나머지 24명은 구경꾼인 객체로 전락한다. 단상 위 소수만 말하고 다수는 모래밭에서 박수를 치던 20세기 ‘웅변의 시대’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다.
그는 서구식 토론의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대법정(아레오파고스)에서 돈을 받고 변론하던 소피스트들의 역사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당시 변론 시간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6분짜리 물시계인 ‘클렙시드라’를 도입하면서 서구 토론은 발언 시간과 순서가 엄격히 통제되는 틀로 굳어졌고, 진행자는 시간만 계측하는 역할에 머물렀다는 설명이다.
반면 한국식 확장형 토론은 마가·우가·저가·구가 등 부족장들이 왕을 중심으로 모여 국사를 논하던 부여의 제가회의와 만장일치를 지향한 화백제도의 정신에 뿌리를 둔다. 조선시대 조정에서 왕을 정점으로 노론과 소론 등 백여 명의 대신이 한자리에서 치열하게 정책을 논하던 경연과 조회의 풍경도 같은 맥락이다.
핵심 차이는 ‘진행자의 권한’과 ‘의사결정 방식’에 있다. 한국식 확장형 토론에서 왕의 역할을 맡은 진행자는 발언의 깊이에 따라 시간을 추가로 부여하거나, 부모에게 외워 온 말만 되풀이하는 발언을 적절히 끊어주며 20명 이상의 다수가 동시에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판을 조율한다. 또한 51%의 다수가 49%의 소수 의견을 묵살하는 다수결 원칙 대신, 부족의 사익을 넘어 전체의 이익을 위해 설득을 넘어선 ‘공유’에 도달하는 만장일치 정신을 지향한다.
‘한국식 확장형’이라는 명칭의 탄생 비화도 흥미롭다. 과거 영남사이버대 논술지도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학계가 서구식 토론만 ‘형식 토론’으로 분류하고 한국의 고유한 논의 방식을 ‘비형식 토론’으로 격하하는 것에 민족적 자존심이 상해 고심하던 차에 한 컨설턴트 목사가 “우리는 넓어지고 변화하는 ‘한국식 확장형 토론’으로 부르고, 서구식은 좁고 변하지 않는 ‘고정형 토론’으로 부르자”고 제안해 오늘날의 이름을 얻게 됐다.
■ “독서의 목적은 지적 확장”… 숨은 역사까지 32년 지켜온 무대
이 행사가 ‘대회’가 아닌 ‘축제’를, ‘경쟁’이 아닌 ‘비경쟁’을 내세우는 이유는 독서토론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
신 박사는 “독서토론에서 방점은 토론이 아니라 독서에 찍혀야 하며, 독서의 목적은 상대를 꺾는 승리가 아니라 ‘지적 확장’에 있다”고 강조한다. 한 사람이 100권의 책을 읽으면 한 권의 생각에 머물지만, 100명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면 100권의 책이 탄생한다는 논리다. 혼자 골몰하는 생각은 이미 남들이 다 해본 현실에 불과하기에, 내가 떠드는 시간보다 타인의 생각을 경청하며 배우는 ‘생각 나눔의 훈련’이야말로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는 가장 생산적인 교육이라는 뜻이다.
명칭에 붙은 ‘제23회’라는 숫자 뒤에는 30년이 넘는 세월이 숨어 있다. 규정상 장관상이 신설되기까지 7년, 국회의장상이 격상되기까지 또 7년의 실적이 필요해 수면 아래의 기간을 합치면 30년이며,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회를 열지 못한 2년 반을 더하면 사실상 32년의 역사를 지닌 행사다. “이제 23년째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너희가 관심을 안 가져줘서 내가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고 농담처럼 건넨 그의 말 속에는, 외래 이론 번역에만 급급하던 교육 풍토 속에서 30년 넘게 토종 토론 모델을 지켜온 개척자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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