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10시 경기도의회 지하 1층 대회의실에서는 ‘2026 경기도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현재와 미래 토론회’가 열렸다.
23일 오전 10시 경기도의회 지하 1층 대회의실에서는 ‘2026 경기도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현재와 미래 토론회’가 열렸다.

“제가 일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월급을 받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번 돈으로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월이 다가오면 너무나 불안합니다. 내년에도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을 웃으면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도 안정적인 직장에서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지적장애를 딛고 경기장애인부모연대 부천지회에서 문화예술 노동자로 일하는 한장완 씨가 더듬거리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마이크를 쥐자, 경기도의회 대회의실을 가득 메운 100여 명의 참석자 사이에서 깊은 탄식과 함께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휠체어에 몸을 싣고 회의장을 지킨 중증장애인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23일 오전 10시, 경기도의회 지하 1층 대회의실에서는 사단법인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전권협) 경기지부 주관으로 ‘2026 경기도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현재와 미래 토론회’가 열렸다. 국회의원 김주영·서미화·서영석 의원과 경기도의원 7명이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경기도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성과와 과제: 지속가능한 확대·발전을 위한 제도화 방안’이라는 절박한 물음을 던졌다.

◇ 25명에서 880명으로 일군 기적… 그러나 도비 100% 구조 속 ‘해고 공포’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시장 경쟁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온 최중증장애인에게 권익옹호, 문화예술, 인식개선이라는 공공 직무를 부여하고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맞춤형 일자리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제8조(인식제고)와 제27조(근로 및 고용)를 국가와 지자체가 직접 노동으로 실현한다는 취지다.

경기도에서는 2021년 5개 기관 25명으로 첫발을 뗐다. 당사자들의 끈질긴 투쟁을 거쳐 2022년 200명, 2024년 665명, 2026년 현재 880명(예산 127억 7,000만 원)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현재 전국 13개 지자체 노동자 1,657명의 51.3%, 전체 예산(243억 8,000만 원)의 52.4%가 경기도에 집중되어 있을 만큼 경기도는 전국 권리중심 일자리의 명실상부한 중심축이다.

그러나 이 눈부신 성과 이면에는 극단적인 고용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국비 지원 없이 100% 도비로만 운영되는 구조 탓에, 지자체의 재정 여건이나 단체장의 정치적 기조에 따라 일자리가 통째로 흔들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3년 말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업을 일방적으로 종료하면서 400명의 노동자가 길거리로 내쫓겼고, 경기도에서도 2024년 수행기관 재공모 과정에서 3개 기관이 탈락하며 노동자 45명이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경기도가 심각한 세수 결손을 이유로 ‘재정 비상’을 선언하면서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경기도가 3년 이상 계속된 복지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2027년 본예산 편성 한도를 전년 대비 50% 수준으로 통제하겠다고 밝히면서, 도비 127억 원이 전액 삭감되어 일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장을 덮치고 있다.

◇ 김기룡 교수 “국가 법률 부재가 낳은 연쇄… 33.8억 원이면 12개월 연중 고용 가능”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김기룡 중부대학교 특수교육과 교수는 경기도 사업의 실태를 법적 안정성, 재정 안정성, 고용 안정성, 처우·지원 체계, 성과관리 정합성, 당사자 참여 구조 등 6개 차원에서 면밀히 진단했다. 분석 결과 법적·재정적·고용 안정성과 참여 구조 등 4개 영역이 낙제점인 ‘미흡’ 판정을 받았다.

김 교수는 “국가 법률에 명확한 근거가 없다 보니 지방정부 재량사업으로 전락했고, 이것이 연 단위 보조금 편성과 10~11개월 ‘쪼개기 고용’으로 이어져 퇴직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제도의 연쇄 파탄이 일어났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경기도 참여 노동자의 상용근로자 비율은 0.0%이며, 92.5%가 월 100만 원 미만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족쇄를 풀기 위해 김 교수는 법률(국회), 재정(중앙정부), 운영(경기도)이 맞물리는 ‘3층 제도화 로드맵’을 제시했다.

우선 국회에는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인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해 법적 근거를 세울 것을 촉구했다. 중앙정부를 향해서는 2027년 연구용역 수준(약 2억 원)에 그친 고용노동부 예산에 국가 시범사업 시행 예산을 반영하고, 국비 보조율을 50% 이상으로 법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다가오는 12월 본예산 심의를 앞둔 경기도를 향해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김 교수는 “2027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추계했을 때, 경기도 880명 노동자의 12개월 연중 고용(18.8억 원), 퇴직급여 적립(8.3억 원), 조례에 명시된 전담인력 8명당 1명 이행(6.7억 원)에 필요한 추가 재원은 연간 33.8억 원에 불과하다”며 “이는 2026년 도 예산의 26.5% 수준으로, 국비 50% 매칭이 이뤄진다면 도 부담은 오히려 80.8억 원으로 대폭 줄어든다”고 밝혔다.

아울러 평가지표에서 기존 노동자의 해고를 유발하는 ‘신규 참여자 20% 의무 채용’ 독소조항을 삭제하고, 수행기관 탈락 시에도 노동자의 일자리는 승계하는 ‘고용과 평가의 분리’를 공모 지침에 못 박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 “삭감은 곧 살인”… 현장의 절규와 뜨거운 연대

이어진 토론에서는 일자리를 지켜내기 위한 당사자 단체와 현장 전문가들의 격정적인 목소리가 쏟아졌다.

서동운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사무국장은 “사회적투자수익률(SROI)과 비용편익 분석(CBA)을 적용하면, 중증장애인 일자리는 단순한 예산 소비가 아니라 시설 수용비와 의료급여 지출을 줄이고 가족의 경제활동을 이끄는 막대한 사회적 투자”라며 복지 함정을 해소할 소득공제 특례를 주장했다.

김병태 안산단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안산 센터의 참여자 30명 중 10명이 탈시설 장애인이고 20명이 인생 첫 직장을 얻은 분들”이라며 “노동을 통해 스스로 돈을 벌고 지역 상가를 이용하며 경사로를 만들고 버스 정류장 이름을 바꾸어 온 이들의 삶을 도비 삭감이라는 칼날로 다시 방구석과 시설로 퇴출시키는 것은 사회적 살인”이라고 직격했다.

팔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역시 “중증장애인이 권리를 주장하고 차별을 없애기 위해 거리에 나서는 캠페인은 사회 전체의 공공적 가치를 생산하는 정당한 노동”이라며 “추미애 도지사가 진정 ‘민생’을 챙기겠다면 가장 취약한 최중증장애인의 노동권 예산부터 지켜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좌장을 맡은 박경석 전권협 경기지부 대표는 “우리가 던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질문은 최중증장애인 한 사람의 배제가 결국 사회 전체의 위기임을 일깨우는 외침”이라며 “앞으로 남은 두 달간 경기도의회 본예산 심의와 국회 예산 심의를 향해 노동자들의 일터를 지키기 위한 모든 연대의 끈을 쥐고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시사큐브 양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