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 전경 [사진=경기도]](https://nnotwacry2xmbpev.public.blob.vercel-storage.com/articles/1792636093678-tzuopt.jpg)
경기도의 이주민 인구는 84만5,074명이다. 미등록 체류자까지 더하면 100만 명을 훌쩍 넘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이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는 이 거대한 자치단체가 2년 전 스스로 내걸었던 간판을 내린다.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이민사회국’의 문을 닫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년이었다. 이유는 명쾌하다. ‘유사·중복 기능의 통폐합’, 그리고 ‘재정 비상’. 30개 실·국을 25개로 줄이면 곳간을 아낄 수 있다는 셈법이다.
장부 위의 숫자는 티 없이 말끔하다. 하지만 관료의 책상 위에서 숫자가 말끔해질 때, 현장의 사람은 가장 먼저 지워진다. 조직 개편의 외피는 통합이지만, 실질은 격하다. 독립된 국(局)이었던 부서는 과(課) 단위로 주저앉아 ‘성평등가족국’이라는 거대한 바구니 구석에 포개진다. 간판은 넓어졌으나 초점은 흐려졌다. 제조 공장의 야간 교대조를 지키는 외국인 노동자, 체류 자격의 경계에서 숨죽이는 미등록 이주민, 난민과 유학생, 다문화가정의 돌봄 문제까지—저마다 다른 생애주기와 법적 권리, 처절한 노동의 현안들을 일개 과 하나에 쓸어 담았다. 이것은 결코 행정의 효율이 아니다. 정책의 증발이자 정교하게 포장된 축소다.
이 조직은 어느 날 도지사의 결재 한 번으로 뚝딱 만들어진 모래성이 아니었다. 2010년 김문수 지사 시절 다문화가족과로 닻을 올린 이래, 남경필, 이재명, 김동연을 거치며 10여 년간 의회와 관가, 현장의 활동가와 학계가 축조해 온 제도적 자산이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경기도만큼은 이민사회로의 불가역적 전환을 선제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정치적 합의가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추미애 지사는 취임 113일 만에 그 합의의 축을 단칼에 잘라냈다. 칼끝에 얹힌 명분은 단출했다. ‘돈이 없다.’ 재정을 조여야 한다는 논리를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순간은 온다. 그러나 무엇을 먼저 깎아내느냐가 곧 정치의 본령이자 철학이다. 불요불급한 토목 사업이나 관행적인 축제 예산, 청사 유지비를 줄이는 것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생을 설계하던 행정의 뼈대를 부러뜨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100만 명의 이웃을 장부상 ‘비용’으로 취급할 것인가, 사회의 영속을 함께 짊어질 ‘동료 시민’으로 대우할 것인가. 오경석 경기도이민사회통합지원센터장의 지적대로 이번 결정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명백한 퇴행이다.
더 서늘한 것은 이 후퇴가 부를 도미노 현상이다. “선도적으로 치고 나가던 경기도마저 국을 과로 강등시켰는데, 우리가 왜 굳이 돈과 인력을 들여 조직을 유지하느냐.” 이병하 교수의 서늘한 경고는 머지않아 다른 지자체들의 손쉬운 변명으로 작동할 것이다. 전국 유일의 실험이 실패로 낙인찍히는 순간, 대한민국 이민행정의 시계는 10년 전으로 맥없이 되감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주민을 두고 “시혜와 배려의 대상이 아닌 온전한 권리의 주체”라고 못 박았다. 배려는 재정에 여유가 있을 때 베푸는 동정이지만, 권리는 곳간이 비어갈 때도 끝까지 사수해야 하는 원칙이다. 84만 권리 주체의 전담 컨트롤타워를 허물면서 재정 위기를 방패막이로 삼는 행태는 위선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84만 명이 도정의 우선순위 목록에서 언제든 지워도 탈 없는 존재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비상(非常)의 순간, 무엇을 가장 먼저 내던지는가를 보면 그 조직의 민낯이 드러난다. 경기도가 이번 개편안에서 내다 버린 것은 ‘국’이라는 푸른 현판 하나가 아니다. 100만 명의 이웃과 끝까지 존엄하게 공존하겠다던 우리 사회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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