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포천의 특별한 점 가운데 하나는 노인인구 비율이다. 포천은 노인인구가 약 30%에 이르는 ‘고도 초고령사회’다. 전국 평균보다도 8%포인트가량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난히 빠른 나라로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반갑지 않은 ‘빠름’도 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속도다. 프랑스가 약 150년에 걸쳐 고령화를 겪은 데 비해, 우리나라는 일본보다도 빠른 속도로 불과 25년 만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충분한 준비 없이 맞닥뜨린 결과는 노인 빈곤과 자살률이라는 또 다른 불명예스러운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젊은 세대 역시 먹고살기 어려워 부모 세대를 충분히 돌보기 힘들다. 지금은 인구가 많은 4050세대가 위아래 세대를 어느 정도 떠받치고 있지만, 인구 규모가 큰 1970년대생들마저 곧 60대에 접어든다. 머지않아 돌봄의 부담은 가족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노케어’, 즉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현상은 더 이상 예외적인 모습이 아니다. 어쩌면 초고령사회를 버텨낼 가장 현실적인 지역 공동체의 방식일 수 있다.
◇ 하모니카가 만든 건강과 자존감
최근 포천시민축제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만났다. 포천 시니어하모니카팀이 시민광장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친 것이다.
팀을 이끄는 지인은 남성 7인 그룹과 함께 무대에 올라 시민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저녁에는 군내면 한얼홀에서 남녀 혼성팀으로 다시 공연했다. 이 팀은 평소 주 2회, 한 번에 두 시간씩 꾸준히 연습해 왔다. 지금은 지역 곳곳에서 초청공연을 다닐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더 인상적인 것은 공연 자체만이 아니었다. 공무원 출신인 팀장은 20여 명의 회원을 겸손하고 자연스럽게 이끌며, 상당한 시간을 봉사하고 있다. 회원들에게 연주를 가르치는 일은 물론이고 공연을 준비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이 활동이 큰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작은 예산과 공연 수입은 회원들의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재무적 가치다. 정기적으로 만나 연습하는 과정에서 건강을 관리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무대에 올라 박수를 받는다. 이는 노인들에게 건강과 자존감, 사회적 소속감을 되돌려준다.
노인을 단순히 복지서비스를 받는 대상으로만 바라볼 때는 보이지 않던 가치다.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서로를 격려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시민이었다.

◇ 동평제, 어르신들이 지켜온 마을의 기억
선단동 동교리에서 열린 마을 행사 ‘동평제’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았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전해지는 이 행사는 마을의 전통과 공동체 정신을 확인하는 자리다.
대부분 노인으로 구성된 마을 주민들과 마을 이장은 행사를 함께 준비했다. 의식을 치른 뒤에는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살폈다. 누가 특별히 지시하지 않아도 각자 맡은 역할을 알고 움직였고, 행사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챙겼다.
이 장면은 단순한 마을행사가 아니었다. 한 지역의 역사와 기억, 생활의 지혜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어르신들은 행사의 주인공이자 준비자였고, 마을의 문화와 인문적 가치를 지켜온 증인이었다.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지역사회가 잃기 쉬운 것은 단순한 노동력만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관계망과 기억,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의 지혜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 동평제와 같은 마을 공동체는 바로 그 자산을 보존하고 있었다.
◇ 노인 한 명은 도서관이다
“노인 한 명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수십 년을 살아온 한 사람의 경험에는 가족을 돌본 지혜, 생업의 기술,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지역의 역사와 생활사가 담겨 있다.
물론 모든 노인을 이상화할 필요는 없다. 세대 간 갈등도 있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노인을 사회적 비용으로만 보는 시선 역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노인들은 여전히 배우고, 일하고, 공연하고, 봉사하고, 지역사회를 조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자율성과 역량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다.
지금까지의 노인정책은 주로 보호와 지원에 초점을 맞춰왔다. 경제적 어려움을 덜고, 건강을 관리하며, 외로움을 줄이는 정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노인이 스스로 활동을 기획하고, 서로 돌보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
◇ 자율성을 밀어주는 ‘넛지’식 지원이 필요하다
그 방법은 거창한 대규모 사업일 필요가 없다. 작은 공간을 제공하고, 악기나 장비를 지원하고, 공연과 전시의 기회를 연결하고, 마을 공동체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산을 보태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행정이 모든 것을 대신하는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다. 노인들이 직접 조직하고 운영하되, 행정은 필요한 순간에 뒤에서 밀어주는 ‘넛지(Nudge)’식 지원이 효과적이다. 자율성을 빼앗지 않으면서도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시니어 음악팀, 마을 역사 기록단, 생활기술 나눔단, 노인 일자리 협동조합, 세대 간 교육 프로그램 등 가능성은 다양하다. 특히 포천처럼 농촌과 도시의 특성이 함께 있고, 고령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노인 스스로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정책의 목표도 바뀌어야 한다. 노인에게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에서, 노인이 무엇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로 전환해야 한다. 일자리를 제공하더라도 단순 반복 업무에만 머물지 말고, 개인의 경험과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활동을 발굴해야 한다.
◇ 초고령사회, 해답은 ‘노인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노인이 참여하는 사회’다
포천의 시니어하모니카팀과 동평제는 크고 화려한 사업이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초고령사회를 대하는 중요한 방향이 담겨 있다.
어르신들은 스스로 공동체를 가꾸고, 경제적·정신적으로 서로를 지지하며, 지역사회의 문화와 관계를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존재를 넘어, 서로를 돌보고 지역에 기여하는 주체였다.
초고령사회는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노인을 부양해야 할 부담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역의 경험과 지혜를 가진 자산으로 재발견해야 한다. 청년 세대가 노인 세대를 무조건 책임지는 구조도, 노인들이 서로의 삶을 전적으로 떠맡는 구조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세대가 서로 돕고, 노인 스스로도 서로를 돌보며, 행정은 자율적인 활동이 살아나도록 뒷받침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포천의 미래는 노인인구 비율이 높은 도시라는 통계에만 있지 않다. 그 많은 어르신들이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지역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인 한 명은 도서관이다. 그리고 노인들이 함께 움직일 때, 그 도서관들은 하나의 학교이자 공연장이며 돌봄공동체가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들의 가능성을 대신하는 행정이 아니라, 스스로 펼칠 수 있도록 조용히 밀어주는 행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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