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천시농업기술센터 직원이 구역으로 갈라진 시멘트 바닥에서 십 년 넘게 아무도 돌보지 않던 오른쪽 진입로에 꽃을 심고 퇴비를 날랐다.
한 포천시농업기술센터 직원이 구역으로 갈라진 시멘트 바닥에서 십 년 넘게 아무도 돌보지 않던 오른쪽 진입로에 꽃을 심고 퇴비를 날랐다.

엔진오일 냄새와 용접 연기가 자욱한 경기 포천의 농기계임대센터 앞마당, 빗자루를 든 한 노동자가 경계선 너머의 낙엽을 쓸어 담았다. 사무실 왼쪽은 내 구역, 오른쪽은 남의 구역으로 갈라진 시멘트 바닥에서 그는 십 년 넘게 아무도 돌보지 않던 오른쪽 진입로에 꽃을 심고 퇴비를 날랐다.

정해진 업무 분장표의 칸막이에 갇히지 않고 공동의 공간을 제 손으로 넓혀가는 노동의 자발성이 만들어낸 광경이다.

산업화 이후 근대 일터는 철저한 분업과 효율의 논리로 설계됐다. 테일러리즘이 쪼개놓은 직무 기술서는 노동자를 정해진 톱니바퀴로 묶어두었고, 사람들은 계약서에 적히지 않은 수고를 낭비나 손해로 여기기 시작했다. 2023년 갤럽의 글로벌 직장 보고서에 따르면 자신의 일에 적극적으로 몰입한다고 답한 한국 직장인은 12%에 불과했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저서 <장인>에서 "일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내적 동기가 사라질 때 인간은 노동의 주체가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한다"고 짚었다. 경계를 지우는 작은 헌신은 계약 사회가 거세해버린 노동의 존엄을 되살리는 행위다.

물론 주어진 일만 깔끔하게 완수하는 태도를 탓할 수는 없다. 명확한 분업은 불필요한 과로와 갑질을 막아내는 안전장치이며, 보상 없는 호의가 관행이라는 이름의 착취로 굳어지는 일터의 현실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타당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선만 그어둔 채 타인의 결핍을 외면하는 일터에서는 어떤 연대나 활력도 자라나지 못한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본질은 억지 희생의 강요가 아니다. 경계선 앞에서 멈추지 않는 한 사람의 발걸음이 회색빛 일터를 사람 사는 공간으로 되돌려놓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