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생의 도시’에서 ‘기회의 도시’로?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포천시가 지난 9일 ‘방위산업발전협의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당연직 2명과 위촉직 18명 등 모두 20명으로 구성된 협의체다. 포천시는 이를 산·학·연·군·관 협력의 출발점으로 내세우며 드론과 무인체계 등 첨단방위산업 생태계 조성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수십 년간 군사시설로 인한 규제와 개발 제약을 감내해 온 포천을 ‘희생의 도시’에서 ‘기회의 도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범식과 보도자료만으로는 도시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 포천이 안보를 위해 감내해 온 불이익을 산업적 기회로 바꾸겠다는 구상은 타당하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만 놓고 보면 여전히 선언과 기대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협의회가 또 하나의 회의체로 남는다면, 이번 출범은 새로운 성장의 시작이 아니라 기존 ‘보상 정치’의 외피만 바꾼 행사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 기반은 쌓였지만, 아직 성과라고 부르기엔 이르다

포천시가 방위산업에 뛰어든 배경에는 몇 가지 변화가 있다.

지난해 경기국방벤처센터 유치로 기술과 사업화를 연결할 기반이 마련됐고, 올해 예정된 대한민국 드론공방전 개최지 선정도 관련 산업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난 9월 1일 기존 신성장사업과를 ‘첨단방위산업과’로 개편한 것 역시 방위산업을 전담 행정 분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시설을 유치하고 부서를 신설했다고 산업 생태계가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센터가 포천 기업의 기술 고도화와 수주로 이어졌는지, 드론 행사가 지역기업의 매출과 고용으로 연결됐는지, 첨단방위산업과가 어떤 기업을 대상으로 어떤 사업을 추진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을 유치했다’는 실적 홍보가 아니라 ‘무엇이 달라졌는가’에 대한 검증이다. 포천 기업의 방산 진입 건수, 시제품 개발 건수, 군·공공기관 납품 실적, 신규 고용 규모 등 구체적인 지표가 제시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성과는 행정적 준비 단계 이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 드론·무인체계, 유행을 따라가는 것과 전략은 다르다

포천시는 드론과 무인체계를 특화 분야로 제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드론·자율·인공지능 중심으로 방위산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만큼,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다. 포천이 보유한 군사시설과 훈련장, 비행 공역 등은 실증과 시험평가의 자산으로 활용될 여지도 있다.

그러나 ‘드론이 뜨고 있으니 포천도 드론을 하겠다’는 식의 접근이라면 곤란하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드론산업을 내세우고 있고, 방산 관련 기관과 기업을 유치하려는 경쟁도 이미 치열하다. 포천만의 강점이 무엇인지, 기업이 왜 포천에 와야 하는지, 실증 이후 양산과 조달까지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제시되지 않으면 특화산업은 곧바로 구호로 전락한다.

특히 실증에는 비용이 따른다. 안전관리, 전파 간섭, 소음, 보안, 주민 수용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시험평가를 수행할 전문인력과 장비도 필요하다. 단순히 넓은 공간과 군사시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이 몰려오지는 않는다. 포천시는 ‘시험할 공간이 있다’는 수준을 넘어 ‘시험하고, 인증받고, 계약하고, 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 협의회가 넘어야 할 첫 번째 문턱은 ‘자문’이 아니라 ‘실행’이다

20명 규모의 협의회는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협의회의 권한과 책임이다.

협의회가 분기별 회의를 열고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방위산업 생태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문기구가 많다고 산업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회의 횟수가 아니라, 누가 어떤 목표를 책임지고 언제까지 성과를 낼 것인지다.

가령 2026년 드론공방전을 단순한 전시·홍보 행사가 아니라 포천 기업의 시제품이 실제 군과 방산기업의 평가를 받고 계약으로 이어지는 ‘바잉쇼’로 만들겠다면, 지금부터 참여기업 선정, 제품 검증, 수요기관 연결, 예산 확보, 후속 계약까지 단계별 계획을 공개해야 한다.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표현도 구체화되어야 한다. 지원 대상은 누구인지, 지원금은 얼마인지, 기술개발 이후 판로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실패한 기업에 대한 재도전 기회는 있는지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협의회는 전문가 명단만 화려한 또 하나의 자문기구에 머물 수밖에 없다.

◇ 앵커기업 없는 클러스터, 현실은 녹록지 않다

포천의 가장 큰 약점은 방산 대기업이나 체계종합업체가 없다는 점이다. 경기국방벤처센터가 기술과 사업화의 연결고리가 될 수는 있지만, 벤처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실제 양산과 납품으로 끌어갈 앵커기업이 없다면 성장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방산은 일반 제조업과 다르다. 기술만 있다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의 소요와 시험평가, 조달 절차, 보안요건, 유지보수 체계까지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소규모 기업이 자체적으로 이 모든 과정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포천시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연구기관과 기업을 모으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과 체계종합업체, 군 관련 기관을 포천과 연결하고, 지역기업이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구매·공동개발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관내 금속·기계·소재 분야 중소기업 300여 곳을 방산 공급망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도 마찬가지다. 민수기업을 방산기업으로 전환하려면 품질인증, 보안체계, 생산공정 개선, 기술개발 자금, 수요처 확보가 동시에 필요하다. 단순 교육이나 컨설팅 몇 차례로는 불가능하다. ‘민수-군수 전환 프로그램’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업종별 진단과 기업별 지원계획, 납품을 보장할 수 있는 수요처가 함께 제시돼야 한다.

◇ 주민에게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포천시가 반드시 넘어야 할 가장 민감한 문제는 주민 상생이다.

포천 시민들은 오랫동안 군사시설과 각종 규제로 인한 소음, 재산권 제한, 개발 제약을 감내해 왔다. 이제 와서 같은 군사시설을 근거로 방위산업을 추진하겠다면, 주민 입장에서는 “또 다른 희생을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드론 테스트베드와 방산시설이 들어서면 소음과 전파 간섭, 보안구역 확대, 교통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사전에 설명하고 주민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없다면 사업은 시작부터 갈등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협의회 구성에 주민 대표와 환경·소음 전문가가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군과 기업, 행정기관만 참여하는 협의체는 산업 추진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주민에게 돌아가는 이익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테스트베드 주변 상권 활성화, 청년 드론 자격증과 연계한 일자리, 지역업체 우선 참여, 관련 세수와 수익의 지역 환원 등 체감 가능한 상생 모델이 필요하다. “지역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추상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가, 언제, 얼마나 혜택을 받는지 제시해야 한다.

◇ 포천이 노려야 할 것은 ‘또 하나의 방산도시’가 아니다

포천이 창원이나 대전과 같은 방산도시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생산과 연구에서 경쟁하기보다 수도권 접근성을 바탕으로 ‘실전형 드론·대드론 체계 실증도시’라는 틈새를 공략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서울에서 1시간 안팎에 접근할 수 있고, 군사훈련장과 비행공역을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이 장점을 실제 산업 경쟁력으로 바꾸려면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의 시험평가 예산, 관련 사업, 군 수요를 포천으로 끌어와야 한다.

협의회가 가장 먼저 다뤄야 할 안건도 바로 이 부분이어야 한다. 내년 시험평가 예산을 어떻게 유치할 것인지, 어떤 무기체계와 실증사업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 포천이 제공할 수 있는 시설과 행정지원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인재 정주 대책도 빠질 수 없다. 첨단방위산업과를 신설한다고 연구원과 기술자가 포천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인재가 정착하려면 주거·교육·의료·교통 인프라가 필요하다. 방산기업 재직자와 연구원 가족을 위한 정주 패키지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포천은 결국 ‘시험만 하는 도시’, 혹은 ‘행사만 개최하는 도시’에 머물 수 있다.

◇ 선언은 충분하다. 이제는 계약과 일자리로 답해야 한다

방위산업발전협의회 출범은 포천시가 군사시설을 제약이 아닌 자산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그러나 상징은 산업이 아니다. 출범식은 성과가 아니며, 협의회 명단은 생태계가 아니다.

포천시가 정말로 ‘안보의 도시’에서 ‘산업의 도시’로 전환하겠다면 앞으로 보여줘야 할 것은 분명하다. 포천 기업의 방산 진입, 실제 시제품 개발, 군·기업과의 계약, 신규 고용, 주민 소득 증가다.

그렇지 않다면 방위산업은 시민들이 감내해 온 희생을 다시 포장하는 행정 구호에 그칠 수 있다. 보상 논리를 성장 논리로 바꾸겠다는 선언은 이제 충분히 나왔다. 남은 것은 20명의 협의회가 회의실을 나와 실제 사업과 계약, 일자리로 그 선언을 증명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