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종로 운현궁 마당, 서늘한 바깥 공기를 가르고 묵직하고 곰삭은 냄새가 먼저 코를 찌른다. 메주콩의 구수한 단내와 고기가 장시간 발효되며 남긴 진득한 감칠맛의 향이다. 10월 24일 열린 ‘2026 궁중과 사대부가 전통 음식 축제’ 현장 한편, 포천 대아농원을 이끄는 김명희 전통식품 명인이 옥빛 치마저고리를 차려입고 백색 천막 아래 섰다.

천막 안 조리대 위에는 세월의 더께가 앉은 듯 윤이 나는 옹기 항아리가 중심을 잡고 있다. 뚜껑을 비껴 열어둔 작은 독 안에는 검붉은 빛을 띤 장이 찰랑인다. 바로 콩과 쇠고기를 함께 발효시켜 궁중과 사대부의 기품 있는 감칠맛을 완성하던 ‘청육장(淸肉醬)’이다. 곁에는 곱게 선별된 동글납작한 메주콩과 단단하게 말라붙은 건고추, 서늘한 기운을 머금은 백무와 붉은 결이 선명한 쇠고기 양지가 오롯이 놓여 이 깊은 맛의 시작점을 증명한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칼끝의 세심한 흔적이 묻어난다. 넓은 무쇠 전골냄비 가장자리에는 꽃 모양으로 일일이 정교하게 오려낸 두부 조각들이 촘촘히 둘러섰다. 가운데에는 흙냄새를 머금은 노루궁뎅이버섯과 칼집을 낸 표고, 실파가 단정하게 자리를 잡은 ‘청육장 두부버섯찌개’다. 달군 솥에 육수를 붓고 장 한 술을 풀어 끓여내면 뽀얗게 피어오를 구수한 김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옆에 놓인 항아리 속 ‘청육장 참송이조림’은 윤택이 자르르 흐르는 진갈색 장물 속에 통통한 마늘과 버섯이 빈틈없이 잠겨 있다. 달큼하면서도 짭조름한 장내가 베어 물었을 때 터져 나올 버섯의 차진 즙을 짐작하게 한다. 투박한 옹기 볼에 소복이 담긴 ‘청육장 배추김치’는 젓갈의 비릿함 대신 육장의 묵직한 발효미가 배추 속잎 구석구석까지 배어들어 붉고 싱그러운 윤기를 뿜어낸다. 아삭하게 씹히는 소리와 뒤이어 입안을 채울 묵직한 산미가 감돈다.

부스 앞을 지나던 관람객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연신 고개를 내민다.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 소리가 잇따르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부터 손을 잡고 나온 젊은 연인들까지 장독대 너머로 코를 킁얼거리며 감탄을 뱉는다.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는 장 하나 담그는 데도 이리 정성이 들었구나."


바람이 불 때마다 천막 자락이 펄럭이며 햇살이 옹기 표면을 비춘다. 기와지붕 너머로 가을이 깊어가는 도심 한복판, 포천에서 길어 올린 발효의 시간이 종로 고궁의 뜰을 소박하고도 깊은 향으로 채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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