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정오, 오전 내내 포천여자중학교 현장 점검을 마치고 나온 유범영 중대재해 예방 컨설턴트(기술사)의 걸음은 분주했다. 실내의 어두운 역광을 피해 야외 나무 그늘 아래에 선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서울 강북구 미아동 자택에서 포천 외곽 학교까지 왕복 네 시간 넘는 거리를 매주 달리는 현장 전문가의 단단한 표정이 카메라 렌즈에 담겼다.[사진=양상현 기자]](https://nnotwacry2xmbpev.public.blob.vercel-storage.com/articles/1792558086369-gnfu2d.jpg)
10월 21일 정오, 오전 내내 포천여자중학교 현장 점검을 마치고 나온 유범영 중대재해 예방 컨설턴트(기술사)의 걸음은 분주했다. 실내의 어두운 역광을 피해 야외 나무 그늘 아래에 선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서울 강북구 미아동 자택에서 포천 외곽 학교까지 왕복 네 시간 넘는 거리를 매주 달리는 현장 전문가의 단단한 표정이 카메라 렌즈에 담겼다.
포천 지역 학교 현장의 안전망을 촘촘히 조이는 숨은 주역이다. 정년퇴직 후 안전 컨설팅 업계에 몸담은 지 4년 차인 그는 안전보건공단 중대재해 컨설팅 사업에서 국내 최다 수준인 16개 기업을 전담했던 베테랑 기술사다. 포천교육지원청이 주관하고 경기도교육청 예산이 투입되는 학교 중대재해 예방 컨설팅 사업에는 지난해부터 2년 연속 참여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 기술사급 전문 인력이 2년 연속 투입된 사례는 전국에서 포천이 처음이다.
방문 횟수부터 압도적이다. 지난해 홀로 관내 52개교를 돌며 연 4회씩 점검을 마쳤고, 현장 개선 효과가 뚜렷하다는 평가에 힘입어 올해는 점검 주기가 두 달에 한 번(연 6회)으로 대폭 늘었다. 관내 50개교를 기준으로 연간 300회에 달하는 강행군이다. 올해는 2인 1조 분담 체제로 개편돼 유 컨설턴트가 37개교를 맡아 새벽녘 관인면부터 소흘읍까지 포천 전역을 누빈다.
■ 서류부터 교장 면담까지 4단계 정밀 진단… “가장 위험한 곳은 급식실”
학교 정문을 통과하면 행정실에 들러 방문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된다. 점검은 회차마다 치밀하게 역할이 나뉜다. 1회차에 안전보건 관리 서류를 훑고 나면, 2·3회차에는 현장 구석구석을 직접 발로 뛰며 살핀다. 4회차에는 앞선 지적 사항과 위험성 평가가 제대로 이행됐는지 다시 서류와 현장을 대조한다. 점검의 마침표는 언제나 학교장 면담이다. 지난해 연 1회였던 학교장 대면 논의를 올해는 전반기와 후반기 연 2회로 늘려 관리자의 경각심을 직접 일깨우고 있다.
수백 번 학교를 돌며 그가 지목한 위험 1순위 공간은 단연 ‘급식실’이다. 교실과 복도가 평온해 보이는 것과 달리 급식실 문턱을 넘는 순간 산업 현장과 다름없는 위험 요인이 도사린다.
“대형 조리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엄청납니다. 여름철엔 에어컨을 틀어도 안전 보호구와 마스크까지 착용해야 하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지죠. 환기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물기 있는 바닥에 미끄럼 위험은 없는지 매번 깐깐하게 따져 봅니다. 근무자 대부분이 여성 조리종사원이라 중량물 취급에 따른 근골격계 질환 위험도 높습니다. 남자들에겐 가벼워 보이는 무게도 여성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거든요. 예전엔 일반 가정에서도 잘 안 쓰는 20kg짜리 쌀포대를 학교 급식실에서 그대로 썼는데, 지속적인 개선 권고로 요즘은 10kg 소포장 단위로 바뀌고 운반 보조기구까지 보급돼 작업 환경이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 거점 급식부터 ‘초음파 뱀 퇴치기’까지… 도농복합 포천만의 안전 풍경
학교가 가장 밀집한 소흘읍 등 도심권 학교와 북부 산간 지역 학교의 안전 과제는 결이 다르다. 전교생이 20~30명 안팎인 이동면과 관인면 등 소규모 학교들은 자체 조리 대신 ‘거점 급식’ 체제를 가동한다. 이동중학교 같은 거점학교에서 인근 소규모 초등학교 물량까지 한꺼번에 조리해 보온 차량으로 배달하면, 각 학교에서는 배식만 진행하는 방식이다. 조리 과정의 위험은 거점학교에 집중해 관리하고, 소규모 학교는 위생과 배식 동선 안전에 주력한다.
북부 지역 학교들에서는 뜻밖의 복병인 ‘뱀’과의 사투도 벌어진다. 논밭과 물웅덩이가 인접해 개구리가 많은 학교들이 대표적이다.
“공기가 맑고 주변이 온통 논밭이다 보니 개구리 같은 먹이를 찾아 뱀이 학교 안으로 들어옵니다. 코로나 시절 운동장 단체 활동이 멈춰 잡초가 무성해졌을 때도 뱀이 출몰해 애를 먹었죠. 요즘은 운동장과 화단 잡초를 수시로 바짝 깎아내고, 땅속에 초음파 진동 소리를 내는 ‘뱀 퇴치기’를 설치해 접근을 원천 차단하고 있습니다.”
대중매체가 만든 왜곡된 통념도 바로잡았다. 텔레비전 학원물 드라마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리즈를 보면 중·고등학생들이 학교 옥상에 자유롭게 올라가 일탈 행위를 일으키거나 뛰어다니는 장면이 단골로 등장한다. 실제 포천 관내 학교 옥상은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해 철망과 이중 잠금 통제 시설로 완벽히 봉쇄돼 있다. 교문 앞 안전요원 대기실(배움터지킴이실)의 냉난방 설비부터 교내 소화전, 급식 위생에 이르기까지 일선 학교의 시설 수준은 이미 일본 등 선진국 기준을 웃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 ‘지적질’ 대신 던진 화두… “안전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완비된 시설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을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이다. 유 컨설턴트는 지난 6월 동남고등학교 강당에서 교직원들을 모아놓고 1시간 동안 특별 강연을 펼쳤다. 경기도교육청 관내에서 안전 분야 외부 전문가가 교직원 대상 단독 강연에 나선 첫 사례였다. 연단에 선 그가 꺼내 든 주제는 딱딱한 법규가 아닌 ‘감성 안전’과 ‘사다리에 대한 우리의 자세’였다.
“그동안 안전 교육이 왜 효과가 없었냐면, 현장에 와서 뭐가 잘못됐다고 일방적으로 ‘지적질’만 했기 때문입니다. 점검 나오는 사람을 공격자로 여기고 불편해하면 안전 의식은 절대 자라지 않아요. 재미와 감동으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행정실장님이나 교장 선생님과 마주 앉으면 퀴즈처럼 묻습니다. ‘안전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십중팔구 ‘불안전’이나 ‘위험’이라고 답하죠. 저는 ‘불행’이라고 말씀드립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오르내리는 사다리에서 잠깐 방심해 떨어지는 단 한 번의 실수가 개인의 불행, 가정의 불행, 나아가 사회와 국가의 불행으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현장의 변화를 이끄는 최종 열쇠는 결국 학교장과 행정실장의 ‘안전 리더십’에 있다. 정년퇴임을 1~2년 앞둔 일부 관리자들이 사고 발생 시 학부모 민원이나 인사·연금상의 불이익을 우려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쉽지만, 리더가 확고한 안전 철학을 갖고 예산을 기민하게 투입하는 학교는 현장의 공기부터 다르다.
유 컨설턴트는 매 반기마다 관리자의 리더십과 현장 관리 상태, 위험성 평가 이행도를 종합해 우수 학교 보고서를 올린다. 지난해 전반기에는 선단동 선단초등학교가, 후반기에는 이동중학교와 대경중학교, 영북고등학교 등이 우수 사례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 전반기에는 신북면 삼성중학교가 탁월한 현장 관리 리더십을 인정받아 모범 학교로 선정됐다.
학교 울타리 안의 안전망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의 시선은 학교 밖 산업 현장으로 향한다. 겨울철이면 이틀에 한 번꼴로 크고 작은 화재가 잇따르는 포천에는 용정·장자·에코그린·양문산업단지 등 수많은 공장과 물류창고가 밀집해 있어서다.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도화선이 됐던 대형 물류창고 화재들도 결국 공사 기간에 쫓겨 안전 수칙을 무시한 채 작업을 몰아붙이다 터진 인재였습니다. 포천 관내 산업단지들도 인터넷 화면만 켜두는 형식적인 온라인 교육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학교 현장처럼 실무 전문가들이 직접 공장을 찾아가 위험 요인을 짚어주고 경영진의 안전 철학을 깨우는 현장 중심 컨설팅이 산업 단지 전반으로 확산돼야 합니다.”
시사큐브 양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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