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학교 간호학과가 9월 29일 교내 학술관 제1컨퍼런스홀에서 ‘제31회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열고 본격적인 임상실습을 앞둔 예비 간호사들의 첫걸음을 격려했다.[사진=세명대]
세명대학교 간호학과가 9월 29일 교내 학술관 제1컨퍼런스홀에서 ‘제31회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열고 본격적인 임상실습을 앞둔 예비 간호사들의 첫걸음을 격려했다.[사진=세명대]

9월 29일 세명대학교 컨퍼런스홀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학과 2학년 학생들이 촛불을 건네받았다. 병원 실습이라는 거친 현장으로 첫발을 떼기 직전, 학생들은 나이팅게일의 봉사와 희생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지금 돌봄의 숭고한 사명감이 개인의 무조건적인 인내와 침묵으로 치환되는 모순적 구조를 목격하고 있다.

19세기 크림전쟁의 야전병원에서 시작된 나이팅게일 선서는 근대 간호의 윤리적 기틀을 세웠다. 그러나 현대 의료 시스템 속에서 이 아름다운 의식은 종종 노동 환경의 구조적 결함을 가리는 장막으로 작동한다. 보건의료노조의 202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의 1년 내 사직률은 57.4%에 달하며, 절반 이상이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과중한 업무 강도를 퇴사 이유로 꼽았다. 사회학자 아를리 호크실드는 "감정노동이 체제 안에서 제도적 지원 없이 개인의 헌신에만 기댈 때 노동자는 급격한 탈진에 직면한다"고 적었다. 백년 전의 서약은 병원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안에서 노동의 정당한 권리를 사명감이라는 감정 뒤로 숨기게 만든다.

물론 생명을 다루는 전문직으로서 높은 윤리의식과 환자를 향한 공감 능력은 어떤 기술적 숙련보다 앞서야 마땅하다. 의료 현장의 긴장감 속에서 직업적 책임감을 다지는 의식이 학생들에게 단단한 내면의 이정표가 된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직업 윤리를 강조하는 일이 열악한 처우와 무한 책임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선서식장의 촛불을 보며 물어야 할 것은 청년들이 바칠 헌신의 크기가 아니다. 불꽃이 꺼진 뒤 그들이 마주할 어두운 병동 복도를 온전한 노동의 공간으로 지탱해 줄 사회적 안전망의 존재 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