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월) 오후 6시, 포천교육지원청 마홀나래관 집단교육실에서 다가오는 '10.9 전국교원집회'를 앞두고 아동복지법 개정과 교원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조합원총회가 열렸다.[사진=육기엽]
지난 9월 28일(월) 오후 6시, 포천교육지원청 마홀나래관 집단교육실에서 다가오는 '10.9 전국교원집회'를 앞두고 아동복지법 개정과 교원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조합원총회가 열렸다.[사진=육기엽]

지난달 28일 저녁, 경기 포천교육지원청의 한 교육실에서 교사 14명이 모였다. 비디오프로젝터가 켜지지 않아 준비한 발표는 못 했고, 대신 인쇄물을 돌려 읽었다. 서울 면적의 1.4배에 달하는 포천에서 퇴근 후에 이 정도 모이는 일은 쉽지 않다. 이들이 읽은 것은 오는 10월 9일 전국교원집회의 두 가지 요구였다. 아동복지법 개정, 그리고 교원 정치기본권 보장이다.

이 두 요구는 겉으로는 별개처럼 보인다. 하나는 교사를 보호해 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사가 말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둘을 한 자리에서 외친다는 것은 교사가 스스로를 두 방향에서 압박받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신고와 조사 앞에서 위축되고, 정치적 발언 앞에서 침묵하는 존재라는 인식이다. 이 인식이 얼마나 타당한지, 그리고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따져 보자.

◇보호받을 권리: 원칙은 같고 설계가 다르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아동 보호의 원칙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교원은 법적으로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다. 학교는 학대를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곳이고, 아동은 스스로 피해를 알리기 어렵다. 신고 체계를 느슨하게 하자는 요구는 어떤 이유로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같은 학교에서 교사가 신고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정당한 생활지도와 학대 사이의 선은 생각보다 흐릿하다.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이른바 교권 5법이 개정됐지만, 교원단체는 현장의 체감은 여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이 주장의 사실 여부는 신고 건수와 처분 결과, 조사 기간 같은 통계로 가려야 한다. 신고 건수만 늘어놓아서도, 무혐의 비율만 강조해서도 안 된다.

쟁점은 아동 보호냐 교사 보호냐가 아니다. 보호의 절차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정당한 교육활동의 기준을 어디까지 구체화할 것인가, 사실관계가 확정되기 전 분리 조치와 직위해제를 어떤 요건에서 허용할 것인가, 조사 과정에서 교육 현장을 아는 기관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이 세 질문에 답하는 일은 아동을 덜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보호가 정확하게 작동하게 하자는 것이다. 억울한 신고와 오래 끄는 조사는 교사만 소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작 보호가 필요한 아동의 사건에 쓰일 자원도 갉아먹는다.

◇말할 권리: 침묵과 공정성은 다르다

두 번째 요구는 훨씬 논쟁적이다. 교사는 헌법상 시민이지만, 헌법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도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교원의 정당 가입이나 선거운동, 교원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규정을 합헌으로 본 적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원단체가 "위헌 소지가 크다"고 말할 때, 이 사실을 빼놓고 말해서는 정직하지 않다. 학생은 교사를 선택할 수 없고, 교사는 평가와 지도로 학생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다. 학부모들이 중립을 요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중립'이라는 말은 두 가지로 읽힌다. 하나는 교사가 정치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에게 특정 이념을 주입하지 않는 상태다. 전자는 교사를 시민에서 지워 버리고, 후자는 교육의 공정성을 지킨다. 헌법이 요구하는 것이 어느 쪽인지는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지만, 적어도 교육정책을 비판하거나 입법 청원에 참여하는 일까지 '정치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묶는 것이 정당한지는 되물어야 한다. 교사는 교육정책의 가장 가까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례도 일률적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교사들의 시국선언을 둘러싼 사건에서 형사처벌을 인정하지 않는 취지로 판단한 적이 있고, 선거 관여나 특정 정당 지지에는 엄격했다는 평가가 있다. 결국 판례가 보여 주는 것은 전면 허용도 전면 금지도 아니라, 장소와 직무 관련성, 학생에 대한 영향력에 따른 구분이다. 법원이 사안마다 판단하게 두지 말고 입법이 그 구분을 명확히 해야 하는 이유다. 구분이 모호하면 교사는 하지 않아도 될 침묵을 스스로 택하게 된다.

◇두 권리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이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왜 교사들은 이 두 요구를 함께 외칠까. 답은 두 권리가 같은 문제의 다른 얼굴이라는 데 있다. 신고와 조사가 두려운 교사는 말을 아끼고, 말을 아끼는 교사는 제도가 잘못 설계되어 있어도 바꾸자고 하기 어렵다. 보호받지 못하면 말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면 보호받는 제도를 만들 수 없다.

그렇다고 두 요구가 같은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다. 아동복지법의 절차 보완은 아동 보호라는 가치와 충돌하지 않게 설계할 수 있고, 그만큼 사회적 합의가 빠를 수 있다. 정치기본권은 헌재 판단과 교육의 중립성, 학부모의 신뢰라는 더 무거운 쟁점을 거쳐야 한다. 교원단체가 두 요구를 한 묶음으로 밀어붙인다면, 합의 가능한 첫 번째 요구마저 두 번째 요구의 논쟁에 끌려갈 수 있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오히려 요구를 실현하는 길일지 모른다.

◇선을 긋는 일은 집회장이 아니라 국회에 있다

10월 9일 집회는 요구를 알리는 자리일 뿐이다. 아동복지법 개정도, 교원 정치기본권 확대도 입법이 필요하다. 해외 사례를 참고하더라도 나라마다 공무원 제도와 정당 정치 환경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국 제도를 그대로 들여오는 일이 아니라, 우리 학교에서 합의 가능한 선을 찾는 일이다.

아동권리 단체, 학부모, 교원단체, 교육당국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한쪽의 요구만 앞세우면 다른 쪽의 불신을 부르고, 그 불신은 결국 학생들이 있는 교실로 돌아온다. 교사가 보호받아야 한다는 말과 아동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말은 서로를 지울 때가 아니라 서로를 점검할 때 힘을 갖는다.

포천의 14명이 들고 있던 손피켓의 구호는 간단했다. 그러나 그 구호가 현실이 되려면 간단하지 않은 합의가 필요하다. 교사는 보호받아야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학생 앞에서는 공정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함께 지키는 제도를 만드는 것, 그것이 이번 논쟁이 사회에 던진 숙제다.